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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이야기 39

탈북자 구출에 목숨 바치신 박준재 할아버지

1996년 초겨울, 연변은 몹시 추웠다. 피골이 상접한 탈북자들이 밤마다 두만강을 넘어 몰려왔다. 거리와 마을은 동냥하는 탈북자로 넘쳐났다. 그때 머리 흰 50대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연길에선 가장 넓은 축에 속하는 120m²짜리 아파트를 3채나 사서 탈북 고아들을 데려가 돌봤다. 1999년까지 3년 동안 그곳을 거친 탈북 고아는 200명이 넘었다. 그의 이름은 박준재. 미국 시민권자로 제프리 박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한중수교가 막 이뤄졌던 1992년 즈음 중국에 처음 왔다. 초기엔 흑룡강 성에서 사비를 들여 50여 개의 교회를 만들어 농민들을 전도했다. 미국에서 모텔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가 무엇에 끌려 중국 전도에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던 중 박 씨는 연변에 탈북자들이 몰려든다는 소..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감동실화이야기!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글도 모르시는 당신에게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 어머니, 어머니란 이름만 입속으로 되 내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홀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슬픔이 나의 생활이 되어버린 요즘 이 딸이 한 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감사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이승을 떠나는 그 날까지 아니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걷어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조금 전 당신은 귀저기 갈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며 아직 조금 남아있는 한 쪽 발의 힘으로 마구 발길질을 하시며 발버둥을 치셨지요...

가난한 서울대 합격자의 수기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망가진 가방, 빛바랜 옷...... 종현이가 가진 것 중에 해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책과 영어사전뿐이었다. 종현이네 집안은 형편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기 힘들어 수강료를 내지 않는 대신 각 교실마다 칠판 지우는 일을 하면서 부족한 과목의 수업을 들었다. 하루하루를 나날이 피곤에 찌들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종현이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종현이는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종현이가 어릴 때, 종현이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종현이 엄마를 때렸다.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던 ..

기자! 거지가 되다 !

뉴질랜드·한국 '4시간 거지체험'… 情의 차이는 서울 신촌 지하철역 15명 2만5천원 뉴질랜드 웰링턴 길거리 32명 10만원뉴질랜드 도미니언 포스트의 데이브 버제스 기자는 거지의 참담한 생활을 체험해보기 위해 거지 차림을 하고 웰링턴 길거리에 4시간 동안 앉아 있었더니 빵 등 먹을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앞에 던져진 동전도 126달러20센트(약 10만원)나 됐다고 16일 밝혔다. 연합뉴스 5월 16일 버제스는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채 'No Money, No Hope(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라고 쓴 피켓을 목에 걸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나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많은 이가 따뜻한 동정과 인심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 기자는 "특히 여성이 나이와 인종을 불문하고 남성보다 훨씬 마음이 따뜻했..

푸르른바다와 초록물고기 의 사랑이야기!감동실화!

정말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01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시원시원한 성격, 섬세한 배려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01 02 하지만 농촌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어서 청년은 결혼을 못했습니다. 청년은 어느 날부터 컴퓨터를 장만하고 인터넷을 하면서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카페에서 활동을 하다가 어느 여자와 E-Mail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02 03 청년은 '바다'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여자는 '초록물고기'였습니다. 청년이 느끼기에 여자는 박학다식하면서도 검소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보였으며 농촌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03 04 여자와 주고받는 메일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청년의 가슴속에는 여자를 향..

한 남자의 고백....

한 남자의 고백....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랬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열성인자만 물려 받았는지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 뒤쳐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 난 동생에게 뒤처졌다. 그래서 항상 난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때문에 난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할때도 내 이름으로 소개 받기 보다는 '누구의 형' 이라는 식으로의 소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중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난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친구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나에겐 그것마저 큰 컴플렉스였다.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

현대판 의좋은 형제_다리위에서 만난우정

♡감동적인 실화♡ 요즘 대한민국을 흔들어놓은~ "감동적인 실화"를 나누려 합니다. ...................... 자살을 기도하던 30대 가장 두 명이 로또에 당첨되고, 이를 둘러싼 미담이 미국 방송 CNN. 일본. 영국... 등과 인터넷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전세계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달 27일 한강대교 북단 다리 아치 위에서 시작됐다.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김씨(38)는 이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을 하기위해 한강대교 다리 아치 위에 올라 갔다. 마침 자살을 기도하던 박씨(38세, 영등포구 대방동)를 만났다. 그러나 주민 신고를 받고 119구조대와 용산경찰서가 긴급 출동해 1시간 만에 자살소동은 종료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난해 8..

길거리의 철학자 이야기

잔잔한 감동-길거리의 철학자그 버스 정류장에는 몇 년째 ‘구두 대학 병원’ 이라는 간판이 붙은 구두 수선집이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언제나 곱추 아저씨가 열심히 구두를고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종식이가 처음 이 구두 병원에 들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종식이는 한쪽만 닳아버린 구두 밑창을 갈기 위해 구두 병원에 들어섰습니다. 먼저 온 아가씨가 구두를 고치고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종식이가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 구두 밑창 좀 갈아주세요.” “네, 그러죠. 좀 앉으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종식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죠? 수선비는 얼만가요?” 아저씨가 대답했습니다. “시간은 37분쯤 걸리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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