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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蛙利鷺(와이로)'의 유래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21. 2.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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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蛙利鷺(와이로)'의 유래

 

 

우리 여주이가 4세조이신 문순공 이규보 할아버지의 청렴과 결백 그리고 실력으로 과거에 급제한 본보기...! 에 얽힌 얘기

고려 20대 신종 임금이 하루는 평복으로 단독 야행을 나갔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쥔장에게 청했지만, 집주인은

"미안하오만 조금만 더 가시면 주막이 있으니 그리 가보시오"하고는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집 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길손을 궁금하게 했다

唯我無蛙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집주인은 바로 李奎報라는 인물이었다.

李奎報(1168~1241)

고려 시대의 시인이자 철학자. 백운거사(白雲居士) 호탕하고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다.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가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 소리를 들었으나, 과거에 여러 차례 떨어졌다.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충헌에게 등용되어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한다.

"도대체 개구리는 무엇을 의미하지~?"

임금(고려 20대 신종)으로서 갖출 만큼 다 갖춘 지식이건만, 개구리의 의미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길손은 주막에 도착하는 대로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외딴집에 대해 물어 보았다.

"주모, 방금 외딴 집을 지나왔는데 쥔장을 혹시 아시오?"

주모가 대답하기를,

"그 분은 과거마다 낙방하고 마을에는 나오지 않는 분입니다.

집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가는 선비입죠."

더욱 궁금해진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아서 선비의 방을 찾아 가서 면담을 신청했다.

"선비양반, 이 집 대문을 들어서는데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글귀는 도통 의미를 몰라서 궁금하더이다"

선비는 허허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지닌 까마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는데,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습죠.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 꾀꼬리는 노래 시합을 하자는 까마귀의 제안이 어이없었지만, 3일 뒤에 노래시합을 하기로 하고, 고귀한 선비 백로에게 심판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 꾀꼬리는 열심히 연습했지요.

그런데, 까마귀는 자루 하나만 들고 들로 나가서 개구리만 잡았습니다.

드디어, 노래 시합 날 지체 높은 백로 앞에서 꾀꼬리와 까마귀는 재주껏 노래 시합을 다 끝냈습죠.

드디어 판정관 백로의 결과 발표 순간~.

"이번 노래 시합의 승자는 까마귀~!!!"

꾀꼬리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까마귀는 지난 사흘 동안 노래 연습 대신 준비한 개구리를 백로에게 뇌물로 바쳤기 때문입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이 말은 조선의 과거 시험이 이렇게 썩었다는 의미입니다.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의 기회를 주는 부정부패로 썩어 빠진 나라를 비유입죠."

● 와(蛙) : 개구리/와.

● 이(利) : 이로울/이.

● 로(鷺) : 해오라기/로, 백로/로.

이 말을 들은 길손(임금)은 선비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함에 놀랐다.

"소인(손님)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이외다."하고 거짓말을 하고, 다음 날, 그 집을 떠났다.

궁궐로 돌아간 임금은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했다.

임시 과거를 보는 날이 되었다. 이규보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고 과거에 응했다.

시험관리가 시제를 내걸었다.

'唯我無蛙 人生之限'(유아무와 인생지한)

이게 웬일인가? 이규보는 깜짝 놀랐다.

자기 집 대문에 붙여 두었던 바로 그 여덟 글자가 아닌가?

이규보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렸다. 그리고는 일필휘지로 단번에 써내려갔다.

장원급제였다. 그 후 이규보는 고려의 학자로 이름을 남긴 튼 인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蛙利鷺 唯我無蛙 人生之恨(와이로 유아무와 인생지한)

개구리蛙(와)/이할利(이)/백로鷺(로)/

즉, '개구리를 주고 이익을 취한 백로' 라는 의미를 지닌 '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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