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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라진 거리, 이런 대구는 처음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20. 2. 2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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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라졌다.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깔깔거리던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살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일주일 전인 지난 18일 화요일, 친한 지인들과 만나 대구 시내에서 저녁을 먹었다. 지역 내 첫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나온 날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급격히 확산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거와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분 좋게 2차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은 삼겹살집에 이어 2차로 간 꼼장어집도 여느 때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썩 좋지 않았으나, 여전히 거리의 간판들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자정 무렵에도 늘어진 간판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룻밤 새에 상황이 달라지다
 
다음 날인 19일 수요일, 대구·경북 신규 확진자가 13명이나 늘었다. 미리 약속된 점심 일정이 취소됐다. 하룻밤 새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날 시댁 어른들은 31번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아이들을 당신들이 사는 경북 고령으로 보내라고 했었다. 그땐 뭐 그리 유난을 떠나 하고 출근을 했는데, 상황이 역전됐다. 결국 아이들을 급하게 시댁에 데려다 주고 왔다.
 
20일 목요일, '코로나 사태'는 본격적으로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예정된 강의, 교육, 회의, 스터디 모임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금요일 동문 모임, 토요일 독서 모임에 이어 주말에 열기로 한 시어머니 생신 기념 가족 모임까지 무산됐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모든 종교활동과 미사를 2주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요일 성당 미사도 열리지 않았다. 모든 초·중·고 개학이 일주일 연기가 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체 자가격리된 아이들은 상황의 심각성과는 별도로 유례없는 방학 연장을 기뻐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대구는 점점 '고립'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론과 SNS에서 봉쇄니, 폐쇄니 하는 말이 떠돌았지만, 실질적인 두려움은 그게 아니었다.

대구 사람들의 심리는 이미 고립된 상태였다. 지역과 지역의 물리적 고립을 넘어 같은 생활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고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부딪히지 않고, 동일한 공간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눴다. 누군가 만나야할 때도 만나자고 말하는 게 죄송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21일 금요일, '불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구 시내의 저녁은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날씨조차 바람이 불어 지난해 다 정리되지 못한 마른 낙엽까지 뒹굴어 다니니 스산하고 적막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번화가인 동성로의 가게들은 간판을 켜놓긴 했으나 자리가 차 있는 테이블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평소 자정 전후로 시끌벅적해지는 클럽 골목도 조용했다.
 
북적거리던 주말이 사라지다  
 
주말을 맞은 대구에는 불안감이 더욱 엄습해 있었다. 길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가게들은 한 집 건너 한 집씩 문을 닫았다.
 
그나마 마트에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간 곳은 물량이 부족해 진열대가 한산할 만큼은 아니었다. 다만 마스크와 소독제는 어딜 가나 부족했다. 아니, 없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은 손님이 없어서, 감염될까 두려워서, 가게 문을 하나둘 닫고 있다. 주말의 번화함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확진자가 600명을 넘고 난 후부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확진이다' '접촉했다' '자가격리 중이다'는 이야기가 일상이 됐다. 이미 나도 자가격리가 이루어진 사람과 수십 번은 접촉했을 것만 같았다. 확진자가 지나간 곳을 나 역시 몇 번이고 다녀갔을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운동하러 가려고 해도 다중이용시설은 대부분 폐쇄된 상황이다. 하다못해 운동장이라도 돌려고 갔더니 학교도 닫혔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주말은 지나갔다.
 
대구에 살고 있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다시 맞은 월요일인 24일, 별다른 전달사항이 없어 출근했다. 대구의 도심을 통과하는 평일 출근길이 너무나 한산하다. 대중교통을 제외하고는 차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 가득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대구 도심에서 꽤 규모가 있는 건물임에도 주차장은 한산하고 엘리베이터도 조용했다. 같은 층의 여행사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다.

지금 대구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무거운 액체가스 같다. 언제 터져 나올지는 모르는.

언론에서 전문가다 논객들이다 하는 사람들이 혐오와 차별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에 현재 살고 있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일상으로의 복귀다.

아이들이 길에서 재잘재잘하는 즐거운 소요가 다시 들려오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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