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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일곱 쌍둥이를 출산했던 여성의 19년 후의 근황!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23. 6. 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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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일곱 쌍둥이를 출산했던 여성의 19년 후의 근황! 

 

 

쌍둥이, 세 쌍둥이, 또는 네 쌍둥이를 임신하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흥분되는 일이다. 
한 부부가 다둥이가 태어날 것임을 알게 됐을 때 신나고 기쁜 가운데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곧 세상에 나올 일곱 아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상상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젊은 부부 케니와 바비 매커위가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들은 첫 딸과 함께 성장할 아이를 한 명 만 더 낳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일생에 다시 없을 놀라운 일을 겪게 됐다. 그러나 맥커위 일곱 쌍둥이가 역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위태로운 그들 인생의 첫 몇 달을 견뎌냈는가, 그 얘기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러 분도 세계 최초 생존 일곱 쌍둥이의 놀라운 얘기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1. 뜻밖의 기대

젊은 아이오와 주의 부부 케니와 바비 맥커위가 최근 시작했던 불임 치료의 일환으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의사를 보러 갔을 때, 이들은 가족이 더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초음파검사 중에 의사들은 바비의 자궁에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스크린에 보이는 태아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일곱이었다! 불임치료를 받는 여성들에게 쌍둥이나 그 이상의 다둥이 임신은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곱 쌍둥이는 여전히 극히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이 부부는 바비와 아기들의 생명을 좌우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2. 일곱의 충격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가운데 케니 맥커위는 처음에 그 충격적인 소식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몇 명?’이라고 물었다”고 그는 그 순간을 회고했다. “아내는 ‘일곱’이라고 말했고 나는 ‘아~’라고 비명을 지르고 그 다음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정말이야?라고 물었다”

처음에 이 부부는 앞으로 나올 일곱 쌍둥이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둘 다 일곱 아기를 임신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상할 수 없었다.

 

3. 지켜보고 기다림

이 부부는 첫 째 딸 미카일라를 임신할 때 이미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흔치 않은 상황인 두 번째도 어느 정도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바비는 다가올 일을 기대하는 동안 자신의 몸이 첫 번째 임신 때보다 빨리 불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비 맥커위가 앉으면 곧 임신한 배의 배꼽이 거의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복부의 임신선이 전과 달리 그렇게 높아지고 넓어지는 것을 보며 무서웠고 이 몸이 얼마나 더 늘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여전히 아무도 그녀가 겪는 것을 짐작할 수 없었다.

4. 기도하는 부모

아기 하나만 임신해도 엄마에게 엄청난 변화와 통증을 유발하는데, 비교적 체구가 작은 바비 맥커위는 일곱명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곧 대가족의 부모가 될 것이라는 기쁨과 함께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어려움도 나타났다.

중압감과 쑤시는 아픔이 더해갈 때, 그렇게 대가족이 살아갈 재정적인 걱정도 커져만 갔다.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맥커위 부부는 자신들이 겪는 흔치 않은 상황에서도 그들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의사는 곧 이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문제를 안겨주게 된다.

5. 위험성이 높은 임신

그녀의 특별한 임신으로 인해 바비 맥커위는 조심스럽게 모니터를 해야했다. 바비와 케니가 그렇게 위험성이 높은 임신에 대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검토할 때 의사는 초기에 논란이 됐던 “선택적 축소”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 시점에서 부부는 이미 희귀한 임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었으며 어떻게 이들이 생존 가능성이 큰 태아만을 보호하는 시술에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 결정을 내렸다.

 

6. 하나님의 손 안에

케니와 바비 맥커위는 그들의 장래 가족에 대해 쏟아지는 의견들의 홍수 속에 있었지만 출산을 앞둔 부모는 그 문제에 대해 둘이서만 의논했고 모든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적 축소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맥커위 부부는 헌신적인 침례교인이었고 그들의 결정은 실제로 예상했던 것 만큼 어렵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그것이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결단을 내렸고 최종적으로 선택적 축소를 거부했다 바비의 모성본능이 나중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따라서 이 부부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7. 출산전 논란

모두 낳기로 한 그들의 결정으로 인해 이 부부는 세상의 이목 속으로 더욱 더 떠밀려 들어가게 됐다. 그들의 결정이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술로 생존 가능성이 더 큰 몇 명만 골라내는 것을 거부한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응원을 받지는 못했다.

“처음에 편지 열 통에 하나 정도는 우리의 결정을 기뻐했고, 우리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대가족으로 세계의 자원을 낭비하는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비난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고 바비는 설명했다. 가끔씩 있는 비난과는 별도로 그들은 곧 또 다른 방법으로 눈물을 흘리게 할 경험을 곧 시작해야 했다.

8. 믿을 수 없을 만큼 쏟아짐

초기 충격에서 벗어난 후 맥커위 부부는 임신으로 기쁨에 넘쳤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로 그렇게 많은 어린 아기들을 돌볼 실행계획에 대해 우려했다. 일곱 쌍둥이에 대한 소식이 퍼지면서 그 가족은 전국적인 화제가 됐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쏟아지기 시작한 기부에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후원자들은 기저귀와 1년 치의 무료 크래프트 마카로니 앤 치즈를 포함해 사려깊은 물품을 제공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기 돌보미를 자청하기도 했고 아주 후한 기부자는 대형 밴 차량을 제공했으며 5천 스퀘어피트의 집까지 제공했다. 이 부부는 사람들의 친절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준비하려 노력하는 만큼 여전히 놀라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9. 서둘러 병원으로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케니와 바비 맥커위는 앞으로 진행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과 분만 중에 예상되는 것들에 대해 의사들과 논의했다. 몇 주가 지나면서 걱정은 쌓여만 갔다. 바비는 28 주까지는 비교적 괜찮았지만 곧 그녀는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1997년 11월 19일, 바비는 일곱 쌍둥이를 품고 있는 그녀의 특별한 임신 30주 차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서둘러 병원에 갔을 때 그녀의 허리 둘레는 55 인치였다 (40주 차에 평균 사이즈의 약 두배).

10. 분만 시작

원래 출산 예정일 보다 9주 빠르게 바비는 분만을 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꼼꼼하게 계획된 출산을 돕기 위해 40 명의 의료 전문가들이 분만실에 모였다. 그러나 그 절차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분만 중 “대혼란”은 없었고 일곱 아기들은 6분 간격으로 태어났다. 일곱 신생아들은 섬세하게 제왕절개로 출산됐으며 분만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기들의 분만은 정말 순조로웠다고 해도 이후 몇 시간과 몇 일이 새로 태어난 일곱 쌍둥이의 생존에 결정적인 기간이 될 것이었다.

11. 일곱 명의 작은 기쁨 보따리

기적적으로 일곱 아기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출산됐다. 일곱 명의 신생아 중 넷은 아들이고 은 딸이었다. 다행히 부부는 이미 이름을 정해 놓고 있었다. 출산된 순서대로 그들은: 케니 주니어, 알렉시스, 나탈리, 켈시, 네이튼, 브랜든, 그리고 조엘이다.

한 명 이상의 아기를 임신했을 때 대체로 그렇듯이 아주 작은 신생아들은 조산에 체중도 3 파운드 4온즈에서 2 파운드 5 온즈 정도였다. 특별 치료가 필요한 아기들은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집으로 가기 전까지 그 곳에서 수 개월을 머물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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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집으로

출산후 길고 긴 석달 열흘 만에 맥커위 일곱 쌍둥이는 마침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일곱 아기들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처음 몇 달을 잘 이겨냈고 맥커위 부부는 일곱 아기 모두를 가족의 밴에 태우고 그들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며 너무나 기뻤다.

아기들이 모두를 놀라게 하고 위험한 출산에도 생존하기는 했지만 알렉시스와 네이튼은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두 아기는 신경근장애로 나중에 혼자서는 걷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곱 아기 모두 그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건강했다. 10명의 식구가 그들의 새 집에 정착할 때, 그들은 누가 자신들의 얘기에 주목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13. 역사를 만들다

의사들은 맥커위의 아기들이 모두 생존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아기를 넘긴 최초의 일곱 쌍둥이라는 역사를 만들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더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꽤 유명한 인물들을 만났다.

전국이 일곱 쌍둥이에 경탄하는 가운데 그들은 주요 매거진 타임과 뉴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했다. 당시 빌 클린튼 대통령은 직접 전화를 걸어 가족을 축하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만났다. 아이들의 첫 번째 생일에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일곱 아기를 키우는 것은 정말 시련이었다.

14. 끊임없는 기저귀

맥커위 가정에 처음 몇 달간은 그 많은 아기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정말 도전이었다. 바비와 케니가 그들이 항상 꿈꾸던 대가족과 함께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기는 했지만 매일 엄청난 52개의 기저귀도 겪어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아기들은 하루에 42개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젓병을 빨아댔다. 하루 종일 먹이고, 기저귀 갈고 울고, 일곱 쌍둥이를 돌보는 것은 시간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맥커위 가족은 미래에 대한 기발한 계획이 있었다.

15. 가족을 먹이는 것

10식구인 맥커위 가족은 초기 기부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재정에 대해 스마트해져야 함을 알았다. 여덟 명의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면 엄청난 양의 음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들은 보다 예산절감이 되는 대용량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신중한 금전관리로 이 가족은 한 달 식품 구매 비용을 약 300 달러로 유지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액수는 당시 미국 4인 가족의 평균 비용이었다. 해가 가면서 가족을 돌보고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16.똘똘한 해결방안

맥커위 일곱 쌍둥이와 그들의 언니 미카일라를 키우는 것은 풀타임 업무라는 것이 증명됐다. 당연히 케니와 바비는 그 업무에 도움이 필요했고 일곱 쌍둥이의 유아기를 지나는 동안 총 35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도왔다.

심부름, 청소, 그리고 잠자는 것도 다른 바쁜 일정 에 포함됐다. 이 가족은 부페 형식으로 식사를 하는 것과 함께 가능한 많은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 식료품 비용을 줄이고 배는 부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가 지나가도 최초로 생존한 일곱 쌍둥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시들지 않았다. 따라서 이 가족은 또 하나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17. 리얼리티 TV 거절

일곱 쌍둥이가 10살이 됐을 때, 가족은 대부분의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존과 케이트 고슬린 가족과 같이 리얼리티 TV에서 그들의 가정을 공개하도록 선정됐지만 맥커위 가족은 모르는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미디어에 일곱 쌍둥이에 대한 방송이 이어질 때, 맥커위 가족은 유명한 다섯 쌍둥이 가족 디온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디온은 세간의 이목 속에서 그들이 경험한 명성의 함정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그 편지 때문이든 아니든 맥커위 가족은 아이들을 가능하면 비공개로 키우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몇 차례 예외는 있었다.

19. 획기적인 영화

맥커위 가정에서는 심심한 순간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항상 누군가는 놀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일곱 쌍둥이가 13세가 됐을 때,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새로운 모험을 맞게 된다.

TLC 방송 제작으로 그 때까지의 그들의 생활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앤 커리가 진행을 맡았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미국의 일곱 쌍둥이가 13살이 되다’였으며 일곱 아이들이 총 91개의 촛불을 끄고 나서  한 달 후에 방송됐다. 앞으로도 그들이 10대 청소년기로 들어가면서 여전히 더 큰 고난과 승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 끝까지 해내다

일곱 쌍둥이 중 알렉시스와 네이튼은 이 때까지 뇌성마비를 안고 인생여정을 잘 지나왔다. 그들 삶의 대부분은 워커를 사용해야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도전적이고 그들의 정신은 절대로 약해지지 않았다.

놀라운 자기 결정력을 보이며 네이튼은 그의 운동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책임을 다했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걷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점점 더 나아졌다”고 그는 말했다. 사랑하는 그의 가족의 도움으로 네이튼과 알렉시스는 그들의 꿈을 따랐고 그녀가 다른 많은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갔다.

21. 미인대회 승리

뇌성마비가 그녀의 인생을 차지하도록 놔두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알렉시스 매커위는 그녀의 인생에 주어진 모든 것을 기뻐했다. 그녀는 심지어 장애아동들 만을 위한 미인선발대회에도 참가했다. 물론 용감하게 무대에 선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대가족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2013년 알렉시스는 아이오와 주 캐롤에서 열린 ‘틴 미스 드림 메이드 트루 (꿈을 현실로 만든 10대 소녀)’에서 우승했다. 그녀는 반에서 상위 15%로 졸업했다 알렉시스는 성큼 성큼 발전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면서 다른 형제자매들과도 함께 계속 세계 최초의 생존 일곱 쌍둥이로서 역사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23. 고등학교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10대가 된 일곱 쌍둥이도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2012년, 그들은 아이오와 주 칼리슬의 칼리슬 고등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도시락과 백팩을 모두 챙기고 이들은 그들의 10대 시절을 함께 할 스쿨버스에 올랐다.

고등학교에서 방향을 찾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다행히 맥커위 가족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교사와 학급 인구들 입장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어렵기는 했어도, 상상해보라 그들의 부모가 사춘기 청소년 일곱 명을 상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일곱 쌍둥이에 대한 어떤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2 5. 자궁 멤버에서 밴드 멤버로

맥커위 일곱 쌍둥이가 자신들끼리 음악 밴드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크로스 컨트리, 합창, 레슬링, 축구 또는 웅변 대회나 뭐가 됐든 각자의 관심사가 있었지만 항상 함께 모이는 곳이 있다. 바로 학교 밴드이다.

학교 스포츠 경기 하프타임 행사에는 일곱 쌍둥이 모두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청소년기 대부분이 그와 같은 매일의 행사로 채워졌지만 미디어에서 참을 수 없는 특정한 주요 시점이 항상 있었다.

27. 가정생활

일곱 쌍둥이가 운전을 배우면서 이들은 첫사랑도 알게되고 틴에이지 인생에 좋은 점과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다. 케니와 바비 맥커위는 어떤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들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들은 항상 어떤 싸움도 이겨내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대관계도 긴밀한 것 같았다.

부모는 일곱 쌍둥이가 잘 자란 것이 자랑스러웠다. 바비는 항상 활동적인 아이들에 대해 “노력의 결실을 맺는 것을 보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또한 수년 동안 역사를 만들고 있는 일곱 쌍둥이에게 많은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가운데 ‘첫 째 미카일라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29. 단체 졸업

2015년 11월 19일, 일곱 쌍둥이들은 18세가 됐다. 고등학교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그들은 모두 각자의 미래에 대한 큰 결정을 내려야했다.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케니와 바비도 이제는 합법적인 성인이 된 일곱 아기들을 집으로 데려 온 것이 바로 어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2016년 5월, 세계 최초로 생존한 일곱 쌍둥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것이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받으면서 시원섭섭한 감성은 정점에 달했다. 바비는 졸업식에서 “끝이 나는 것을 보는 건 슬프다”며 “그러나 처음 시작되는 것도 앞으로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은 계속 자신만의 길을 형성해갔고 놀라운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32. 목표와 꿈

요즘 맥커위 가족은 최초의 생존 일곱 쌍둥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20세에 이르렀다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곱 쌍둥이는 단체라는 전통에서 완전히 멀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케니 주니어는 목공 사업을 시작했다. 브랜든은 약혼해 2018년 7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알렉시스는 유아교육 분야의 커리어를 추구하고 있다. 켈시와 나탈리는 학위를 곧 받게 되며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흥미를 함께 나누는 조엘과 네이튼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맥커위 가족의 느낌은 어떨까?

38. 빈 둥지에 남은 부모

수 년간 맥커위 부모는 그들의 여덟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제 일곱 쌍둥이와 첫 째딸 미카일라는 집을 떠났고 맥커위 부부는 급격히 변화된 새로운 생활방식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

바비와 케니는 이제 생활비도 많이 들지 않고 10 명의 식구가 있을 때처럼 부엌에 음식을 가득 채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여전히 그들은 혼자 세상으로 나가난 자녀들에 대한 새로운 걱정들을 안고 있다. 이제 빈 둥지가 된 상태에서 그들의 넓은 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9. 축소

20년 전 맥커위 가족은 클라크 컴퍼니로부터 5000 스퀘어피트 규모에 방 7개, 욕실 5개의 집을 기부 받았었다. 2018년 2월, 바비와 케니는 둥지가 비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집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우리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니까, 이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적절한 때인 것 같다”고 바비 맥커위는 말했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의 가족이 살 수 있도록 넉넉한 선물을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맥커위 가족은 그 집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되기를 원했다.

40. 환원

아이오와의 비영리단체 루스 하버에 집을 팔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바비 맥커위는 “우리는 그렇게 놀라운 선물을 받는 축복을 받아왔다. 우리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식처로 사용된다는 것 보다 더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을 한 젊은 엄마들에 숙소를 제공한다.

“우리의 필요에 잘 맞는 정말 넉넉한 크기의 집이다. 우리는 그 집을 사용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넘겨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바비의 남편 케니는 말했다. 새로운 추억들이 그 집을 곧 채우게 되겠지만 그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도 잊지 않을 것이며 놀라운 맥커위 멤버의 다음 얘기에 대한 세상의 궁금증도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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