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이야기

1일간의 휴전_눈내리는 숲속오두막집의 기적같은이야기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19. 2. 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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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휴전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인류 역사상 벌어진 전쟁 중 가장 지옥같았다고 평가되는 세계 제1차대전. 처음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장기전의 양상을 보이면서 양측의 군대는 참호를 파고서 대치하는 지리한 전쟁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이런 전쟁 속에서 참호에 틀어박힌 초급장교와 사병들은 하루가 갈수록 지쳐갔고, 그런 와중에도 한 해가 흘러 전선에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사실 크리스마스라고 하여 별 수 있겠는가. 전쟁의 한복판, 참호 속에서 죽음과 맞서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크리스마스조차도 풍요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추위에 떨면서 잠깐의 휴식을 누리던 병사들 사이에서,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캐롤을 부르던 병사들 몇몇이 있었다. 아마도 그 정도가 전장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크리스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캐롤을 부르던 병사들, 이내 수십 미터 바깥의 상대편 참호 속에서도 캐롤이 들려오더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 1m를 전진하기 위해 수없이 피를 뿌려야 했던 포화 속에서, 결코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저들도, 크리스마스가 되니까 자신들과 똑같이 추위 속에 떨면서 캐롤을 부르고, 먼 곳에 떨어진 가족을 생각하면서 이 잔인한 한 해의 축복받은 하룻밤을 옹송그리고 있더라는 것이 아닌가.

그 중 누군가 용기를 내었다. 부대 위문품이랍시고 도착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를 들고서 참호 바깥으로 뛰어올랐던 것. 평소같았다면 바로 총탄이 날아들었겠지만, 아무도 이 병사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다. 그러자 너나할 것 없이, 참호 속에서 병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도 무기를 든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참호 바깥으로 뛰어나와 서로 악수하고, 술잔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딛고 선 땅은, 지난 1년 동안 인간의 피로 다져진, 그래서 어느 누구도 살아서 디딜 수 없는 땅 - No Men's Land 라고 불리우는 그곳이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전쟁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땅 위에서,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크리스마스 이브는 잠깐의 짧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이 분위기에 고무된 일부 초급 간부들은 일시적으로 휴전을 제안했고, 이들은 같이 성탄절 미사를 지냈다. 전사한 적군(?)의 시신을 상대방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독일 대 영국으로 나누어 축구시합도 했는데, 결과는 3-2로 영국이 역전패당했다. 영국 쪽에서는 이 마지막 골이 오프사이드라고 주장했지만, 독일 쪽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항변이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입씨름을 했노라고 양군의 초급 지휘관들은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놓았다.

이와 같은 '그들만의 평화'는 1914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부전선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벨기에의 이에프르 전선이었다. 어떤 곳은 단 하룻밤만이 아니라 2~3일, 심지어는 아예 연말연시를 통째로 잡아서 신년까지 약 1주일의 기간 동안 총성을 멈춘 경우도 있었다. 어느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도 아닌, 오직 전장의 병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평화였다.

하지만 이 일을 두고 각 군의 '높으신 분들'은 격노했다. 그들의 눈에는 자기 휘하의 병사들이 고급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적과 내통한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주동자를 색출한답시고 몇 명을 골라내어 중벌을 가하는가 하면,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겠다면서 병사들의 주둔지를 수시로 바꿨다. 결국 병사들은 전투의 피로에 더해서 주기적으로 불필요한 부대이동을 감당해야 하는 피로까지 감내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지휘관들의 전쟁과, 일선에 나선 장병들의 전쟁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한다. 인간 개개인을 붙잡고 물어보았을 때, 전쟁이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아마도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우리는 전쟁을 긍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비극이자 아이러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으로부터 어느새 만으로 100년이 지났지만, 짧게나마 평화를 원하는 인간 개개인의 순수한 욕망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 클립에 등장하는 영화 <Joyeux Noel>은 바로 이 크리스마스 휴전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국-프랑스-독일의 3국 합작 영화다. 1914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둘러앉아 캐롤을 부르던 이들은 언젠가 자신의 자녀, 혹은 손주의 시대에는 그러한 평화가 일시가 아닌 '일상'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비록,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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