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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눈물의 헌신적인 사랑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19. 8. 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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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볼 때마다 설레는 예쁜 아내. 
6년 전 5월, 경복궁에서 우연히 한국에 여행 온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후광이 비친다는 게 뭔지 그때 비로소 알았다. 
운명이란 그런 건지 아내 역시 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나를 보고 
딱 들은 생각이 ‘귀엽다, 보조개’였다고 한다. 

아내가 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난 열렬하게 구애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쳤다. 
4개 국어를 하는 아내는 호주 유학을 앞둔 
태국에서도 엘리트 집안의 막내였고, 
더욱이 우리 부모님은 동남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으셨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던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카지노딜러로 일하고 있었다. 
가진 건 없지만 건강했고, 사랑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나란 놈을 만나 사랑 하나 믿고 덜컥 한국에 온 아내는 
나를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게 해주는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수현이가 우리에게 왔다. 
수현이의 탄생은 힘겹기만 하던 내 인생의 축복이었다. 
이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작년 봄 수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양가에 누구도 암환자가 없었다. 
아내는 자기가 뭔가 잘못한 탓인 것 같다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독한 투약을 위해 손바닥만 한 아이 가슴에 주사 구멍을 뚫으면서도 
요즘은 의술이 발달했으니 금세 고칠 것이라고, 
항암치료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그런데 수현이는 백혈병 중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암이라 
꼭 이식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당연히 일치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80~90%는 일치자를 찾는다고 했다. 
불안해하는 아내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이식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없었다. 
관련 있는 모든 단체에 연락해 봤지만 
국내 기증자 26만 명 중 수현이와 
유전자 유형이 맞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내는 혹시 태국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태국 전역을 뒤졌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현이는 독한 항암치료를 7차까지 받아야 했다. 
열이 펄펄 끓다 못해 40도는 우습게 올라갔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하며 
배가 아파 우는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전 세계 2,600만 명이 넘는 기증자 중에서도 
수현이와 맞는 사람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 같았다. 
한 명은 있을 거 같은데,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았는데… 
수현이가 아픈 게 모두 엄마의 잘못이라고 
아내는 자꾸 자기 탓을 한다. 
그렇게 밝던 아내가 말수도 줄고 어떤 슬픔도 속으로만 삭인다. 

작년 가을, 기적처럼 중국에서 3명의 기증자를 찾았지만 
허무하게도 2명은 거절했고, 
1명은 정밀검사 결과 불일치 판정을 받았다. 
정말 피눈물이 나왔다. 
세상이 다 미웠다. 

힘없이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수현이를 보면 
아내와 내가 서로 사랑하면 안 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수현이에게 이런 아픔이 없었을 텐데. 
사랑한다는 이유로 앞길이 창창한 아내를 붙잡는 게 아니었다. 
내 사랑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빠 추워.” 
또 다시 수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수현이의 몸을 부지런히 닦으며 덜덜 떠는 아이를 달랬다. 
“수현아 힘내야 돼, 알았지?” 
“응.” 
“우리 수현이,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좀만 더 힘내자, 응?” 
“응.” 
“손 잡아줄게, 수현아. 아빠가… 손 잡아줄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전단지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나눠 주었다. 
“부탁합니다. 한 번만 읽어 봐주세요.” 
각종 단체, 교회, 군부대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전화를 하고 또 찾아갔다. 

수현이의 얼굴이 들어간 전단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전단지가 보이면 모두 주웠다. 
구겨진 부분을 반듯하게 펴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세상에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았다. 
휴직을 한 내 딱한 사연을 알게 된 200여 명의 회사 동료들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나서 주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수현이에게 맞는 기증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나도 너무 불안하다. 
온갖 생각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도 강해져야 한다. 
흔들리면 안 된다. 
나는 아빠니까.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 수현이를 위해 나도 머리를 밀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아빠를 보며 
신이 난 수현이가 까르르 웃었다. 


우리는 반일치이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치자가 아닌 반일치자의 조혈모 세포를 이식하는 것으로 
위험 부담이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각각 50%의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아내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수혈을 하듯이 엄마의 조혈모 세포를 천천히 수현이에게 넣어주었다. 

수술 후 2주 정도까지 수현이의 몸 상태는 괜찮았다. 
하지만 안심하던 찰라 거부반응은 갑자기 왔다. 
빨갛게 피부 이상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숙주병이라 불리는 이식 부작용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피부 숙주반응이 온 것이다. 
노련한 의료진조차 당황했다.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반일치 이식한 환자들 가운데서도 
보기 힘들만큼 심한 거부반응이라고 했다. 

온몸이 울긋불긋 물집이 잡힌 수현이가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렇게 순한 아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주는 걸까. 

지금까지 잘 참던 수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다. 
보드랍던 피부가 심한 발진으로 보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부모가 돼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니. 
가슴이 무너졌다. 
그리고 퇴원은 무기한 연기됐다. 

봄이 왔다. 
나는 여전히 수현이 곁에 24시간 붙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나중에 아빠랑 목욕탕 같이 가자.” 
“응.” 
“수현이 최고.” 
“응!” 

수현이는 마침내 숙주병을 이겨내고 회복세로 돌아섰다. 
피부에는 아직 흉터가 남아 있었지만 
10년이 지나면 다 없어질 것들이다. 
장한 내 아들, 수현이. 
아내는 매일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어 병원으로 싸가지고 온다. 
아내를 보면 나는 괜히 아침도 못 먹었다고 엄살을 피운다. 

“맛있다!” 
“짜지 않아?” 
“응, 조금 짜.” 
웃음이 나온다. 
괜히 음식 투정하며 사랑하는 아들 곁에 있는 
이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아내는 예전의 해맑은 웃음을 되찾았다. 
함께 빡빡 밀었던 내 머리는 제법 자랐다. 

“수현아, 엄마는 아빠 거.” 
엄마를 덥석 끌어안는 아빠를 보며 수현이가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지 석 달. 
오늘 우리 세 식구는 퇴원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용감하게 달려와 준 고마운 수현이. 
설령 수현이에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해도 우리는 두렵지 않다. 
우리의 사랑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사랑은 아낌없이 내 걸 내주고 다시 한 번 더 주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다. 


– MBC 휴먼다큐 사랑 10년의 기적 ‘지금, 사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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