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활을 얼마나 잘쏴야 무관을 할수 있었을까?
부북일기는 박계숙/박취문 부자의 기록인데, 1600년대 전후의 조선 군관들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료로 평가 받고있다. 여기서 활 쏘기와 관련된 기록들을 몇 가지 이야기 해보자.
1. 박계숙의 활 솜씨 - 활쏘기 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50발 중 48발을 명중, 2등은 46발이었음. 원정 대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이때는 50발 중 50발을 모두 명중시켜 병마우후(종3품)에게 칭찬도 받았다. 활쏘기 대회 우승 기록이 꽤 있음.
2. 박취문의 활 솜씨 - 활 쏘기 대회 우승은 많이 했고, 청나라 사신 앞에서 군관 허정도와 배틀을 했는데, 쏘는 족족 명중하니까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과녁에 점 찍고] 여기 맞추면 이기는거임! 을 했는데 박취문은 46발, 허정도는 44발을 명중시키며 박취문이 이겼다고 함.
3. 박취문이 군관들을 모아서 활 쏘기 경합을 했는데, 첫 50발을 명중시킨게 3명, 두 번째(누적 100발)을 명중시킨게 2명-박취문과 이시복, 세 번째(누적 150발)도 명중시켰다. 4번째(누적 200발)에서 결과가 갈렸는데, 박취문은 189발 연속 명중 이후 한발 삐끗이 나서 누적 [199발 명중에 그쳤고(?)] 이시복은 200발 연속 명중에 달성했다.
4. 활 쏘기 대회 꼴등의 성적 - 김신이라는 군관은 인조 23년 5월에 있던 대회에서 꼴등을 했음. 8인 중 김신의 기록은 [50발 중 43발] 적중. 여담으로 50발 2명, 49~47발 1명, 45발 2명이었음.
5. 인조 23년 6월 활 쏘기 대회는 과녁의 중간에 [점에 맞추는 기록만 인정한다고] 했는데, 꼴등은 [50발 중에서 35발]에 그친 군관.
6. 인조 24년 새해 기념 활 쏘기 대회의 꼴등은 2명이었어. 역시 [50발 중 43발] 명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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