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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오해를 받고있는 서양음악사에서 천재라고 불려졌던 인물!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23. 6. 1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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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오해를 받고있는 서양음악사에서 천재라고 불려졌던 인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먼저 이 글은 고전음악 시대의 대표적 천재인 '모차르트(1756-1791)' 와 연관된 글입니다.

그리고 이 모차르트의 인간관계에 있어 대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에 대해서 쓰는 것인데

그 관계성 때문에 일종의 심리학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그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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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네, 그렇게 모차르트와 연관된 인물은 바로 '살리에리(1750-1825)' 입니다.

서양음악사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그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 질투하였고

거기서 2인자가 악의적 열등감을 보이는 심리학 용어 '살리에리 증후군' 이 등장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는 큰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 1.

음악가로서의 당대 인기가 모차르트에 밀렸다?

 

 

실제로 음악가로서의 당대 인기는 살리에리가 더 많았습니다.

살리에리는 1774년 오스트리아의 황실 음악가로 들어간 이후, 1788년부터 궁정악장이 되었고 죽기 1년 전까지(1824) 사실상 30년이란 세월이 넘도록 오스트리아 황실의 궁정악장 직을 맡았습니다. 황실 직속 음악가 중 가장 높은 자리를 수십년간 맡았던 사람으로 사실상 당대의 기득권 음악가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위를 누린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제법 인기를 얻기는 했다만 자신만큼의 명성은 가지지 못한 채 일찍 죽은 모차르트에게 거의 병적인 열등감을 느낀다는 건 애시당초 이치에 맞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모차르트 본인도 빈(오스트리아의 수도, 당대 음악의 중심지)에서 오페라의 인기가 자신이 살리에리에게 밀린다며 편지로 뒷담화를 할 정도였습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 2.

살리에리는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모차르트를 싫어했다?

 

 

아닙니다. 이것도 말하자면 또 절대로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애초에 음악계에서 그와 친했던 인물을 파악하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사회성이 낮은 인물이었고, 반대로 살리에리는 재능과 부, 명예와 인간관계를 모두 갖춘 인물로서 모차르트를 질투할 이유가 하등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모차르트의 방탕하고 문란한 도덕성, 특히 친한 사람들한테는 다정했지만 대체로 경박하고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그 특유의 가벼운 성격을 완고한 도덕주의자인 살리에리가 싫어했기 때문이며(또한 이것은 당대의 다른 음악가들도 지적한 모차르트의 문제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훼방놓았다는 썰 등은 모두 모차르트의 오해이거나 후대에 창작, 재생산 된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 3.

살리에리는 음악가로서 가진 권력을 모차르트 방해에 악용했다?

 

 

살리에리는 음악가로서 쌓아온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단 한번도 악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리에리는 가난한 후배들을 무료로 가르치거나 음악가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도 여는 등 여러 대인배적인 행동으로 당대의 음악계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죠. 심지어 모차르트의 제자나 아들(프란츠 사버 모차르트)도 그를 거쳐갔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살리에리는 1788년 궁정악장이 된 직후에도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 앞에서 자신의 오페라 대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을 지휘했으며, 1790년 레오폴트 2세 황제의 취임식에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대관식 미사(Krönungs messe)' 를 연주하기도 하는 등 모차르트를 여러 면에서 배려해주었습니다. 말년에는 오히려 자신의 음악이 당대의 유행에서 밀린다는걸 파악하고 스스로 물러나 후진양성에 전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당시 살리에리가 가르쳤던 대표 음악가로는 베토벤, 슈베르트, 체르니, 리스트 등이 있습니다.

 

 

 

 

살리에리에 대한 오해 4.

모차르트의 음악활동은 살리에리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다?

모차르트의 생활고도 살리에리의 질투로 인해 시작되었다?

 

 

역시나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도 또 굳이 그러할 이유가 있습니까?

살리에리를 비롯한 기성 음악가들이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흑색선전을 펼쳐서 모차르트가 음악활동에 지장을 받았다거나 돈을 제대로 벌지 못했다는 주장도 분명히 사실과 다릅니다. 사실 모차르트도 그 당시만 따져보자면 살리에리보다는 못했을 지라도 음악의 중심지였던 빈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모차르트가 경제적인 부분에서 항상 부족했던 건, 어디까지나 그가 경제 관념이 부족하고 사치가 굉장히 심했기 때문입니다. 모차르트가 일찍 사망한 것도 그러한 큰 씀씀이를 자기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작곡에 매달렸던 것이 주 원인이었고요. 즉 애초에 가볍고 즉흥적인 모차르트만의 그 성격이 문제였던 겁니다. 절대로 살리에리와 같은 기성 음악가들이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질투해 그의 생업까지 가로막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자신의 아내에게 남긴 편지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인 '마술피리(Die Zauberflöte)' 를 관람하며 "이것이 진정한 오페라다. 앞으로 계속 보러 와야겠다." 며 극찬을 했고 '브라보를 외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전하고 있습니다. 즉 살리에리도 모차르트의 음악활동을 긍정적으로 인정해주었다는 의미죠.

 

 

 

 

2015년 11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공동으로 작곡한 칸타타(성악곡의 일종, 기악반주를 동반함) 악보가 발굴이 됩니다.
일반적인 인식처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정말로 악의를 가진 채 시기하고 질투했다면 이런 악보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어쨌든 이렇게 발굴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공동작곡 악보는 2016년 2월에 처음으로 연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정리해본다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지, 음악적인 협력을 거부할 정도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혐오'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음악가로서는 분명하게 그의 재능을 인정했습니다. 어쩌면 모차르트야말로 사회적인 입지가 든든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살리에리에게 내심 부러움이 있어서 본인이 성공을 못하는 건 살리에리 때문이라고 한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대에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 반대로 말입니다.

 

 

 

- 3줄요약 -

'살리에리 증후군' 의 살리에리는 정작 모차르트에게 시기, 질투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당대에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보다 훨씬 더 많은 존경과 관심을 받았다.

살리에리는 음악가로서 최고 위치에 올랐음에도 모차르트를 배려한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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