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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행복

문방구아들stationerystoreSon 2021. 3. 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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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행복

 

어느 시인(詩人)내외의 젊은 시절(時節)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아침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시인의 아내가 쟁반에다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담아 들고 들어왔다.

“햇고구마가 하도 맛있다고 아랫집에서 그러기에 우리도 좀 사왔어요. 맛이나 보셔요.”  

남편은 본래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식전(食前)에 그런 것을 먹는 게 부담(負擔)스럽게 느껴졌지만, 아내를 대접(待接)하는 뜻에서 그 중 가장 작은 놈을 하나 골라 먹었다.

그리고 쟁반 위에 함께 놓인 홍차(紅茶)를 들었다.  

“하나면 정이 안 간대요. 한 개만 더 드세요.”

아내는 웃으면서 또 이렇게 권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또 한 개를 집었다.

어느 새 밖에 나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남편은

“인제 나가봐야겠소, 밥상을 들여요.” 하고 재촉했다.

“지금 잡숫고 있잖아요. 이 고구마가 오늘 우리 아침밥이어요.”

“뭐요?”

남편은 비로소 집에 쌀이 떨어진 줄을 알고, 무안(無顔)하고 미안(未安)한 생각이 얼굴이 화끈했다.

“쌀이 없으면 없다고 왜 미리 말을 좀 못하는 거요?

사내 봉변(逢變)을 시켜도 유분수(有分數)지.”

뿌루퉁해서 한 마디 쏘아붙이자, 아내가 대답했다.  

“저의 작은 아버님이 장관(長官)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人生)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잔잔한 미소(微笑)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아내 앞에, 남편은 묵연(默然)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엔 형언(形言) 못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一致)하진 않는다.”는 말은 결코 진부(陳腐)한 일 편(一片)의 경구(警句)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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